철향록(철享錄)

 
신재공 한호겸(新齋公 韓好謙 : 中宗 30年(1535) ~ 宣祖 12年(1579) 18世)
 조선조 중기의 학자. 자는 명보(明甫) 호는 신재(新齋) 증참의공(贈參議公 : 傳)의 아들로 승지공(承旨公 : 世信)의 손자이며 어머니는 증 숙부인 여산 송씨(礪山 宋氏)이니 주부공 세장(主簿公 : 世長)의 따님이다.
 공은 어려서부터 부모(父母)에게 효성(孝誠)이 지극(至極)하였고 범인(凡人)들과는 달리 영오(穎悟 : 뛰어나게 총명함)할 뿐만 아니라 한시도 헛되이 보내지 아니하고 면학(勉學 : 학문에 힘씀)에 열중(熱中)하니 이를 아는 사람마다 장차 큰 인물(人物)이 될 것이라고 칭찬(稱讚)이 자자(藉藉)하였다. 그러나 벼슬에는 관심(關心)이 없고 후진양성(後進養成)에만 전력(專力 : 오로지 그 일에만 힘씀)하여 서원(書院)을 창립(創立)하고 많은 인재(人材)를 배출(輩出)하였다.
 선조 21년(1588)에 공의 문인(門人 : 제자)들이 스승의 학덕(學德 : 학식과 덕행)을 흠모(欽慕 : 사모함)하여 사당(祠堂 : 신주를 모시는 집)을 건립(建立)하고 신안서원(新安書院)이라 하였다.
 동왕 30년(1597)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왜적에 의하여 소실(燒失 : 불에 타서 없어짐)되어 오랫동안 유지(遺址)만 남아있다가 현종 10년(1669)에 재건(再建)하였다. 당초(當初)에는 문간공(文簡公 : 李 舒)과 공만을 봉안(奉安)하였다가 그 후 사림(士林 : 선비)의 결의(決議)에 따라 송경원(宋慶元)ㆍ한필성(韓必聖)ㆍ한명유(韓鳴愈)ㆍ송시태(宋時態)ㆍ김수근(金洙根)ㆍ강백진(康伯珍) 선생 등도 추배(追配)되었다.
 
배위는 증 정부인 완산 이씨(完山 李氏)니 참봉공(參奉公 : 士貞)의 따님이다. 슬하에 3남2녀를 생육하니 장남은 충의위공(忠義衛公 : 琪)이고 차남은 봉사공(奉事公 : 瑋)이며 3남은 동지공(同知中樞府事 : 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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