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록(倡義錄 : 義士)

 
한흥(韓 興 : 1888(고종 25年)∼1959))
독립운동가. 일명 일선(日仙)·준형(俊炯) 함경남도 신흥 출생. 보성전문학교(普成專門學校)를 졸업한 뒤 1912년 4월 간도(間島)로 망명, 화룡현(和龍縣) 동명학교(東明學校) 강사로 지내면서 한국교포들에게 민족의식과 독립사상을 고취하였으며 1913년 3월 연해주(沿海州)의 해삼위 (海蔘威) 권업신문사(勸業新聞社) 통신원으로 활약하였다. 1920년 간북북부총판부(墾北北部總辦部) 서기로 선임되어 활동하였고, 같은 해 군자금 조달차 국내로 들어와 활동하다가 평양에서 붙잡혀 5년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1925년 3월 신간회(新幹會) 상무간사로 활약하다가 다시 북경(北京)으로 망명, 선두 자사(先頭者社)에 가입, 원세훈(元世勳)등과 함께 활약하였으며 <중국국민의 구국구족(救國救族)운동에 당하여 우리 2천만 형제자매에게 고함>이라는 격문을 발포하고 항일독립사상을 고취하였다.
1929년 8월 함흥 중앙학원(咸興 中央學園) 및 유치원을 설립, 경영하였고, 1931년 2월 경성 여자상업학교(京城 女子商業學校)를 설립, 부교장에 취임하여 교육에 전념하였다. 한편, 1938년 4월 함흥 대흥상업학원(咸興 大興商業學院)을 창립하여 경영하였고, 1942년 6월에는 함흥 대동학원(咸興 大東學院)의 원장으로 취임하였으며, 다음 해에는 숙명여자실업학원(淑明女子實業學院)의 원장에 취임하는 등 1945년까지 주로 2세 교육에 힘을 기울였다. 1968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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