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공 한덕원(監司公 韓德遠 : 명종 5년(1550)~인조 8년(1630) 19世 淮陽公下)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의백(毅伯) 호는 홍암(紅岩)으로 송재공(松齋公 : 곤) 증좌참찬 겸 지의금부사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증 정부인 함열 남궁씨(咸悅 南宮氏)이니 참판 후(參判 厚)의 따님이며 진사공(進士公 : 去非) 증 호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의 손자이다.
선조(宣祖) 6년(1573) 진사시에 합격하고 동왕 15년(1582) 식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이듬 해 예문관검열로 제수된 뒤 대교, 응교 등을 지냈으며 동왕 25년 임진(1592)에 기복(起復)하여 장단(長湍)부사와 원종공신(原從功臣)에 녹훈(錄勳)되었다. 동 27년 6월 전주부윤 같은 해 겨울 동지사(冬至使)로 명(明)나라에 다녀왔다.
그 후 강원감사, 인천부사, 함경감사 겸 명장(明將)접반사를 역임하고 동 32년에는 다시 동지사로 사행(使行)했으며 33년 2월 경기감사 36년 2월 황해도 관찰사(觀察使) 38년 1월 강원도 관찰사, 같은 해 12월 한성부 좌윤(漢城府 左尹), 동 39년 10월 의주부윤, 광해군(光海君) 원년(1609) 충청감사, 동 2년 1월 호조참판(戶曹參判), 동년 왕세자 책봉사은부사(王世子冊封謝恩副使)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동 3년 8월 전라감사, 동 5년 3월 평안감사, 동 8년 1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동 9년 1월 조도사(調度使), 동 10년 2월 정헌대부 지돈녕부사겸동지춘추관사(正憲大夫知敦寧府事兼同知春秋館事)를 역임했으며 동 11년 기로소(耆老所 : 정2품 이상의 벼슬을 한 사람 중에서 70세 이상된 분을 예우하기 위한 곳이다) 치사(致仕)하였으며 인조(仁祖) 8년(1630) 5월 28일 별세하니 수가 81세이다.
조정에서는 생전에 문과급제한 후 40여 성상을 중앙과 지방의 행정요직을 역임하고 여러 차례 국무(國務)에 진력한 공으로 숭정대부(崇政大夫) 의정부 좌찬성(左贊成) 겸 판의금부사에 증직(贈職)했다.
 
所在地 : 金浦郡
歲享日 : 陰 10月 10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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