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공 한 창(監司公 韓 昌 : ?∼? 13世)
公의 諱는 창(昌)이요 자(字)는 성망(聖望)이요 호(號)는 관수정(觀水亭)이다. 찬성공 계복(贊成公 季復)의 아들이요 증 병조판서(贈 兵曹判書)인 휴(休)의 손자이다.
公이 42세에 타계(他界)하기까지 강원관찰사(江原觀察使)를 마지막으로 지내고 아들 양혜공(襄惠公 : 伯倫 : 右議政)의 영귀(榮貴)로 보조공신 의정부 영의정(補祚功臣 議政府 領議政)에 증작(贈爵)되었다. 아들은 우의정 백륜(右議政 伯倫)과 현령공 숙륜(縣令公 叔倫)이다.
휘 계복, 휘 창(諱 季復, 諱 昌) 두 분의 산소(山所)가 용인군 내사면 식금리(龍仁郡 內四面 植金里)에 있었으며 1910년 경술국치(庚戌國恥)후 일제(日帝)가 등기법(登記法)을 제정, 시행시 구한말 세도가 이지면(制定,施行時 舊韓末 勢道家 李志冕)이 불법(不法)으로 山所 및 石物을 파손, 묘역의 흔적(破損 墓域 痕迹)을 없애고 韓氏門中의 임야(林野)를 이씨 개인소유(李氏 個人所有)로 등기(登記)한 것을 諱 昌 17代孫 在祿, 在烈, 18代孫 東秀가 소송(訴認)을 제기(提起), 승소(勝訴)하여 山所를 보수(補修) 하는 수난(受難)을 겪은 바 있다. 1987년 국토방위(國土防衛)를 위한 국가사업(國家事業)으로 임야전답(林野田畓)이 수용(收用)됨에 門中의 뜻에 따라 1988년 3월 22일 京畿道 安城郡 古三面 月香里 龜石峴으로 移葬되었으며 매년 陰 10월 첫째 일요일에 歲祝를 올린다.
公의 史錄이 傳해 오는 바 없어 후손인 우섭(友燮)이 수집(蒐集)한 자료(資料)를 모아 유사(遺事)를 짓고 후인(後人)의 참고(參考)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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