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도공 한치의(章悼公 韓致義 : 세종 22년(1440)∼성종 4년(1473) 14世)
조선 초기의 문신. 자는 의지(誼之), 양절공(襄節公 : 確)의 둘째 아들로 순창공(淳昌公 : 永정)증 영의정의 손자이며 어머니 남양부부인 홍씨는 대제학 문양공(文良公 : 汝方)의 따님이다.
 단종 3년(1455) 음보로 사정 겸 녹사(司正 兼 錄事)가 되었고 이듬해 생원시에 합격한 뒤 여러 관직을 거쳐 세조 9년(1463) 안동대도호부사가 되어 남방(南方) 제일의 치적(治績 : 정치상의 공적)을 세웠으며 다시 여러 관직을 거쳐 성종 1년(1470) 부호 군 겸 오위장, 동지중추부사, 한성부 좌윤을 역임하고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다녀 왔다. 이듬 해 공조참판에 배명되고 순성좌리공신에 녹훈되고, 청양군(淸陽君)에 봉해 졌으며 동왕3년 병조판서에 배명되었다. 그러나 신병(身病)으로 인하여 관직에서 떠나 사택(私宅)에서 치료 중 성종께서 의약을 하사하고 인수대비(仁粹大妃)께서는 좋은 약과 음식, 또 기도 등 여러가지로 치료방법을 다 하였으나 모두가 무효로 돌아가고 향년 34에 졸하니 조정에서는 2일간 조회를 정지하고 시호를 장도(章悼)라 내리며 부조묘(不조廟)의 특전을 내렸다.
 배위는 정부인 전의 이씨(全義李氏)니 군사공(郡事公 桓全)의 따님이다. 슬하에 2남 1녀를 생하니 장남은 청원군(淸原君 : 偉) 지중추부사요 다음은 평해공(平海公 : 倬)이다.
 
 位置 : 軍浦市 山本洞
 歲享日 : 不조廟 寒食외 2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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