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행록(學行錄)

 
교관공 한사영(敎官公 韓士英 : 광해 7년(1615)~숙종 25년(1699) 23세)
공의 휘(諱)는 사영(士英)이요 자는 군언(君彦)이고 호는 불온재(不온齋)이다. 학정공 준(學正公 峻)의 아들이고 별좌공 일휴(別坐公 日休)의 손자이며 이랑공 서봉(吏郞公 瑞鳳)의 10대손이다. 광해 7년(1615) 1월 15일생이며 공이 생후 6월에 부친이 별세하니 평생에 부친의 존안(尊顔)을 뵙지 못함을 항상 애통하게 여겨 천지죄인(天地罪人)으로 자처(自處) 하였다. 모친(母親)이 풍비(風痺) 로 겨울이면 고통이 더욱 심함에 공이 밤을 새며 간호하니 세인(世人)이 대효(大孝)라 칭하였다.
공이 15, 6세에 이르러 면학(勉學)이 어려웁더니 서당(書堂)에 가서 사서삼경(四書三經)에 능통(能通) 하였다. 병자호란(丙子胡亂 : 인조 14년, 1636)에 모친을 업고 산간설중(山間雪中)에도 무사히 피난하고 귀가(歸家)하니 세인(世人)이 효성(孝誠)을 감탄하였다. 가도(家道)는 청빈(淸貧)하되 봉양(奉養)하는 물품은 풍비(豊備)하더니 나아가 공의 효성을 감탄하여 도가(屠家)에서 선심을 쓰기를 모친의 종기(腫氣)가 위중할 때 우황(牛黃)을 돈도 받지 아니하고 공헌(供獻)하여 곧 쾌차하니 더욱 더 봉선(奉先) 하는 정성이 지극하여 위토(位土)를 매입(買入)하고 제의(祭儀)를 갖추어 돈독한 행실로 자제(子弟)를 훈시(訓示)하였다. 숙종 때 장사랑(將仕郞 : 조선조 때의 문관의 품계를 지내기도 했으며 숙종 25년 (1699) 6월 21일 졸하였는데 수(壽) 85이며 증동몽교관 (贈童蒙敎官)이다.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의 발 불온재가훈(跋 不온齋家訓)이있다. 배위 영인 전주 이씨(令人 全州 李氏)는 진사 훤(進士 萱)의 따님이며 아들은 우극(宇極), 군수 익휘(郡守 益徽), 생원 익저(生元 益著), 서원장 익수(書院長 益壽)이다. 공의 배위 영인 전주 이씨(令人 全州 李氏)는 동왕 16년(1690) 4월 10일 공보다 10년 전에 졸하였다. 묘는 수찬공 묘계하 임좌(修撰公 墓階下 壬坐)에 합조(合兆)이며 오촌 송선생 치규 찬묘(鰲村 宋先生 穉圭 撰墓)이며 장방 서동 안산(長方 西洞 安山)에 정려(旌閭)를 내렸다. 1992년 3월 청주시 수곡동에서 청원군 남일면 송암리 산18-1로 이장(移葬) 하였다.
세향일 음)10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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