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행록(學行錄)

 
월악공 한지(月鐵公 韓 祉 : 숙종(肅宗) 1年(1675)~숙종(肅宗) 46年(1720) 23世)
공은 조선 후기(後期)의 문신이다. 휘(諱)는 지(社)이고 자(字)는 석보(錫甫), 호(號)는 월악(月嶽)이다. 공주(公州) 출신이며, 시와공 태동(是商公 泰東)의 아들이고 장령공 진(掌令公 鎭)의 손자이다. 공은 천성(天性)이 학문(學問)을 좋아하였다. 숙종(蕭宗) 23년(1697) 건원릉 참봉(健元陸 參奉 : 경기도 구리시의 동구릉에 있는 조선 太祖陵의 參奉)이 되었고 동왕 25년(1699)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고 동왕 31년(1705) 헌능 참봉(獻陵 參奉)으로 별시 문과 을과(別試 文科 乙科)의 제1인으로 급제하였다. 1707년 정언(正言), 지평(持平), 수찬(修撰)이 되었다.
1713년 동지사(冬至使)인 조태채(趙泰采)의 일행으로 김상직(金相稷)과 함께 청나라에 다녀왔다. 1714년 병조좌랑(兵曹佐郞)을 지냈고 그후 부수찬, 부교리에 제수되었으나 부임(赴任)하지 않았으며 1718년 충청도 관찰사(忠淸道 觀察使)가 되었다. 공은 관(官)의 귀감이 되었기 목민심서(收民心書)에 공이 감사(藍司) 때 말한 네 가지가 실려있다. 경종 즉위년(景宗 卽位年 1720) 전라도 관찰사(全羅道 觀察使)를 제수받았으나 부임치 않고 이해 12월 5일 공주 효촌 병사(公州 孝村 丙舍)에서 졸하니 향년(享年)이 46세이었다. 숙종 41년(1715) 의주부윤(義州府尹)으로 있을 때는 팔포(八包)의 법을 엄히 지켜 역관(譯官)이나 비록 대관(大官)이라도 이를 범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청렴결백 (淸廉潔白)한 성품(性稟)이었으며 문장(文章)으로 이름이 높았다. 영조 21년(1745) 청백리(淸白吏)로 천거(薦擧)되었다. 저서(著書)로《월악서소(月嶽書疏)》가 있다. 증 이조참판(贈 吏曹參判)이며 배위(配位) 증 정부인 연산 서씨(贈 貞夫人 連山 徐氏)는 통덕랑 재(通德郞 梓)의 따님이며 아들은 좌윤 덕필(左尹 德弼), 통덕랑 덕길(通德郞 德吉), 목사 덕일(牧使 德一), 생원 덕실(生員 德實)이다. 공(公)이 경종 즉위년(1720) 12월 5일 졸함에 용성산 축좌(龍城山 丑坐)에 안장(安葬)하였는데 여서 이성중(女壻 李成中)이 지명(誌銘)을 찬(撰)하였다. 신도비(神道碑)는 묘하(幕下)에 있다. 공(公)의 배 증 정부인 연산 서씨(配 贈 貞夫人 連山 徐氏)는 숙종(肅宗) 44년(1718) 1월 17일에 졸하였는데 공주 월성 산하 효가 건좌(公州 月城 山下 孝家 乾坐)에 홀로 안장(安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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