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행록(學行錄)

 
은탄공 한치상(隱灘公 韓致相 : 인조 22년(1644)~ 숙종 39년(1713) 22세)
공은 조선 중기(中期)의 학자(學者)이다. 휘(諱)는 치상(致相)이고 자는 군거(君擧), 호는 은탄(隱灘)이다. 용와공 경오(傭窩公 儆吾)의 아들이고 수구공 빈(守邱公 빈)의 손자이며 안양공 종손(安襄公 終孫)의 8대손이다. 어머니는 의인 남양 방씨(宜人 南陽 房氏)로 주부 원익의(主簿 元益의) 따님이다. 공은 인조 22년(1644)생이다. 현종 10년(1669)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여 성균생원(成均生員)이 되었으나 관직생활(官職生活)보다는 성리학 연구(性理學 硏究)에 뜻을 두고 후진양성(後進養成)에 힘썼다. 숙종(肅宗) 6년(1680) 성균관에서 수학(受學)할 때 사계 김장생(沙溪 金長生)을 문묘(文廟)에 배향(配享)할 것을 소청(疏請)하였고 다음 해 사람들이 함부로 사당(祠堂)을 세우는 것을 철거하도록 청하였다.
항상 옳은 것을 도왔고 사기(邪氣), 사교(邪敎)를 배척하니 별과 해처럼 빛났다. 숙종(肅宗)39년(1713) 12월 7일 남원 황죽리(南原 黃竹里)에서 70세로 졸하였다.연천(漣川)의 돈암사(豚巖祠)에 배향(配享)되었다. 배위 의인 전의 이씨(宜人 全義 李氏)는 통덕랑 시빈(通德郞 時賓)의 따님이고 의인 김해 김씨(宜人 金海 金氏)는 감역 정하(監役 鼎夏)의 따님이다. 아들은 이기(以箕), 누헌 정기(陋軒 靖箕) 이다. 공은 남원시 도통리(道通里) 산2-1 촌후 해좌(村後 亥坐)에 안장(安葬)되었다. 참판 소곡 윤광소(參判 素谷 尹光紹)가 갈명(碣銘)을 찬(撰)하고 판서 본종 만계(判書 本宗 晩啓)가 글을 썼고 군수 정간(郡守 鄭杆)이 전서(篆書)하였다. 공의 배 의인 전의 이씨(配 宜人 全義 李氏)는 현종(顯宗) 15년(1674) 6월 8일 일찍 졸하니 근가동 조고묘 우자좌(勤佳洞 祖考墓 右子坐)에 안장(安葬)하였다. 공의 배 의인 김해 김씨(配 宜人 金海 金氏)는 숙종 44년(1718) 10월 21일 졸하니 남원시 도통리(南原市 道通里) 촌전대로변 유좌(村前大路邊 酉坐)에 안장(安葬)하였는데 석의(石儀, 石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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