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절록(忠節錄)
승지공 한정칙 (承旨公 韓正則 : 1602∼1662, 20世)
공의 휘(諱 : 이름)는 정칙(正則)이요 자(字)는 자평(子平)이다. 집의공 (執義公) 적(適)의 아들이요 승지공(承旨公) 언윤(彦胤)의 손자로서 일찍이 한학(漢學)을 수학(修學)하고 동몽교관(童蒙敎官)으로 후진(後進)교육에 임하고 있을 때 병자호란(丙子胡亂)이 일어났다. 이때에 남양태수(南陽太守) 윤계동(尹棨同)과 더불어 의병(義兵) 일으킬 일을 논하고 따라서 종군(從軍) 하였다. 전란(戰亂)이 평정(平定)된 후에 관직에 나갈 기회가 없이 졸하니 나라에서 통정대부 승정원 좌승지 겸 경연참찬관(通政大夫 承政院 左承旨 兼 經筵參贊官)을 증직 하였다. 본래 묘비(墓碑)가 있었으나 연유(緣由) 모르게 없어졌고(전란으로 인하여 훼실된 것을 추정) 현재는 문관석(文官石)과 상석(床石)이 있을 뿐이다. 배위 전주 이씨(配位 全州李氏)는 경기도 고양시 관산동 선영(先塋)에 안장(安葬) 되었고 시향은 음 10월9일이다. 계배 용인 이씨(繼配 龍仁 李氏)는 공과 합폄(合 )이다. 승지공과 배위 용인 이씨 시향(時享)은 음 10월 5일이다. 아들 三兄弟가 있었는데 맏아들 서성군 전(西城君 전)과 진사 위 (進士 위), 승지 순(承旨 순),인데 승지공은 숙부(叔父) 사과공(司果公) 이칙(彛則)에 계후(系后)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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