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신(훈)록(功臣(勳)錄)

 
공도공 한의(恭悼公 韓 의 : 1443 ~ 1485 15世)
 公의 諱는 義다. 서원부원군 문양공 계미(西原府院君 文襄公 繼美)의 아들 三兄弟 中 맏이요 함경도 관찰사 청산군 혜(咸鏡道 觀察使 淸山君 惠)의 孫子이다. 모친(母親)은 정희왕후(貞憙王后 : 世祖大王妃)의 여형(女兄)이다. 公이 선문호학(善文好學)하여 일찍이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세조(世祖) 17년 十七歲에 음사(蔭仕)로 전구녹사(典廐錄事)를 시작으로 사복직장 판관 첨정(司僕直長 判官 僉正) 등의 벼슬을 거쳐 勤勉하고 奉公하여 특별히 王의 은권(恩眷 : 임금의 은혜)을 입어 늘 王의 연(輦 : 임금이 타는 가마 : 가마는 俗稱이고 길연 또는 덩이라고 함)을 모셨다.이어 병조참지(兵曹參知) 참판(參判)이 되어 서양군(西陽君)에 봉(封)해지고 성종(成宗)때 순성좌리공신(純誠佐理功臣)의 호(號)를받았다.
 형조 공조(刑曹 工曹)의 참판(參判)을 거쳐 한성좌윤 동지중추 도총부 부총관(同知中樞 都摠府 副摠管)등의 관직을 역임했다. 王의 신임이 두터워 2년내내 위계(位階)가 올라 자헌대부(資憲大夫)가 되었다. 이와같이 公은 장차 크게 쓰일 줄 알았는데 43세를 一期로 世上을 떠나니 王이 부의(賻儀)를 내렸으며 장지는 아버지가 계시는 山所右西北麗에 자리잡았다.
 配位 貞夫人 坡平 尹氏와 合폄인데 公과 동갑(同甲 : 같은나이)인 夫人은 公보다 34년을 더 살다가 世上을 떠났으며 슬하에 三南一女를 아들 亨元은 서원군 이조참판(西原君 吏曹참判)이요, 亨榮은 漢城尹이요, 亨運은 士人이다.
 공도공(恭悼公)은 혁혁(赫赫)한 집안 명문(名門)에서 태어났으되 사치하지 않고 어려서부터 諸生과 더불어 한묵(翰墨 : 붓과 벼루. 한가로이 詩롤 짓고 쓰고하는 것을 이름이다)을 즐겼고 經史를 익혔으며 필법(筆法)이 묘경(妙境)에 들었다고 傳한다.
 成宗 癸卯(1483)년 봄에 정희왕후(貞憙王后 世宗大王妃)가 승하(죽음)하자 公을 수릉관(守陵官)으로 삼았으며 王의 사랑이 두터워 2년 이내에 위계(位階)가 자헌(資憲)에 올랐고 어찰(御札)을 내려 陵上에 여러가지 일들을 오로지 公에게 맡겼음을 보면 王의 公을 신임(信任)함이 매우 두터웠으나 짧은 壽를 世人이 애석(哀惜)하게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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