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행록(學行錄)

 
승지공 한복(承旨公 韓  輹 : 중종 5년(1510)~선조 22년(1589) 17세)
공은 조선 중기(中期)의 문신이다. 휘(諱)는 복(輹)이고 자는 중진(仲進)이며, 증시정공 계상(贈寺正公 繼常)의 둘째 아들이고 부사공 희(府使公 曦)의 손자이며 안양공 종손(安襄公 終孫)의 증손(曾孫)이다. 어머니는 숙인 안동 김씨(淑人 安東 金氏)로 부사 성동(府使 誠童)의 따님이다. 공은 중종 5년(1510)생이다. 중종 35년(1540)생원, 진사되고 명종 10년(1555) 찰방(察訪)으로서 문과갑과(文科甲科)에 장원(壯元)하고 대구부사(大邱府使), 나주목사(羅州牧使)를 거쳐 통훈대부 승정원 우부승지 겸 경연참찬관 춘추관 수찬관(通訓大夫 承政院 右副承旨 兼 經筵參贊官 春秋館 修贊官)을 역임(歷任)하였다. 선조 때 명나라 천사(天使)가 내조(來朝)하여 아조(我朝)의 명류학자(名流學者)를 찾으니 공과 율곡 이이(栗谷 李珥), 미암 유희춘(眉岩 柳希春)을 응선(應選)한 일이 있고 선조 22년(1589) 봉사(奉使)로서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해 8월 16일 80세로 졸하였다. 배위(配位) 숙부인 경주 김씨 (淑夫人 慶州 金氏)는 현령 귀손(縣令 龜孫)의 따님이며 아들은 첨정 응문(僉正 應文), 현감 응인(縣監 應仁)이다.공의 유물(遺物)이 많은데 문과 갑과 장원교지(文科 甲科 壯元敎旨), 문과 장원급제(文科 壯元及第) 후 금의환향(錦衣還鄕)하니 동구(洞口)에 솟대를세움에 지금도 솟대거리라 부르며 대구부사(大邱府使)로 선정(善政)하니 거사비(去思碑)를 세웠으며 공 몰후(公 歿後)에 장만한 제기(祭器)가 지금도 있다. 공과 배위(配位)는 어은리 현부인 묘하(漁隱里 顯夫人 墓下)에 쌍조(雙兆)이며 전의 이도형(全義 李道衡)이 묘명(墓銘)을 찬(撰)하였다.
묘 : 전라북도 임실군 삼계면 어은리 세향일 : 음)10월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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