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행록(學行錄)

 
유음공 한효윤(柳陰公 韓 孝 胤 : 중종 31년(1536)~선조 13년(1580) 18세)
공은 조선 중기(中期)의 문신이다. 휘(諱)는 효윤(孝胤)이고 자는 근숙(謹叔), 호는 유음(柳陰)이다. 근수공 여필(郡守公 汝弼)의 아들이고 정선공 승원(旌善公 昇員)의 손자이며 문정공 계희(文靖公 繼禧)의 현손(玄孫)이다. 어머니는 증 정경부인 문화 유씨(贈 貞敬夫人 文化 柳氏)로 시정 엄(寺正 엄)의 따님이다. 공은 중종(中宗) 31년(1536) 8월 22일 생이다. 외숙(外叔)인 유정건(柳正建)을 찾아 공부하여 향시(鄕試)에 급제하고 명종 22년(1567)에 진사에 오르고 선조 3년(1570) 식년시 병과(式年試 丙科)에 급제(及第)하고 승문원(承文院)에 들어갔다. 1573년 부정자(副正字)가 되고 검열(檢閱)에 천거되었다. 그후 대교(待敎), 봉교(奉敎)에 승진되고 동왕 9년(1576) 공조좌랑(工曹佐郞)이 되었다. 전중(殿中)으로 옮겨 성절하정(聖節賀正)으로 연경(燕京)에 갔다 와서 전적(典籍)이 되었다. 다음 해 종학사회(宗學司誨)로 경성판관(鏡城判官)에 나갔다.
종부시 주부(宗簿寺 主簿)에 승진되었으나 그만두고 선조13년(1580)5월3일 45세로 졸하였다. 증 영의정(贈 領議政)이다. 공은 타고난 바탕이 도(道)에 가깝고 의리(義理)에 찼다. 후배들이 경전(經傳)을 모르면 이를 해결해 주었다. 주역(周易)을 배워 정미(精微)한 곳을 탐색(探索)하여 발명한 바 많아 칭찬을 받았다. 심경(心經), 근사록(近思錄)에 권위(權威)가 있었다. 관혼상제(冠婚喪祭)도 예(禮)대로 할 것을 주장했다. 그의 학식이 뛰어나 세인이 우러러 봤다. 배위(配位) 증 정경부인 평산신씨(贈貞敬夫人 平山申氏)는 예빈정 건(禮賓正 健)의 따님이고 아들은 구암 백겸(久菴 百謙), 증 참판 중겸 (贈 參判 重謙), 서평부원군 문익 준겸(西平府院君 文翼 浚謙)이다. 공은 부평리 가마도 건좌(釜坪里 佳麻島 乾坐)에 안장(安葬) 되었다.
배위 증 정경부인 평산 신씨(配位 贈 貞敬夫人 平山 申氏)는 선조 41년(1608) 5월 27일 졸하니 공과 합조되었다. 상촌 신 흠(象村 申 欽)이 지명(誌銘)을 찬(撰)하고 진원부원군 서형 유근(晋原府院君 西坰 柳根)이 신도비명(神道碑銘)을 지었으며 만취 오억령(晩翠 吳億齡)이 행장(行狀)을 지었고 아들 문익공 준겸(文翼公 浚謙)이 고 비 연보(考 비 年譜)를 지었다. 월사 이정구(月沙 李廷龜)가 부인 묘지(夫人 墓誌)를 찬(撰)하였다. 신도비명(神道碑銘)은 진원부원군 서형 유근 찬(晋原府院君 西坰 柳根 撰)이 짓고, 병조참지 오 준(兵曹參知 吳 竣)이 글을 썼고, 판중추부사 김상헌(判中樞府事 金尙憲)이 전서하여 인조 4년(1626) 10월에 수립(竪立)하였다.
묘 : 경기도 여주군 강천면 부평리 가마도 건좌. 세향일 : 음) 9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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