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행록(學行錄)

 
정일재 한여기(精一齋 韓如琦) 
 公의 諱는 여기(如琦)요 字는 백규(伯圭)요 號는 정일재(精一齋)이니 고위(考位)는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를 지낸 필진(必震)이요 조고(祖考)는 학행(學行)으로 명망(名望)이 높은 협소재(협素齋) 효상(孝祥)이다.
 공은 일찍이 신독재(愼獨齋) 김선생(金先生) 문하(門下)에 유학(遊學)한 바 우암(尤庵) 동춘(同春) 兩先生이 애중하여 호를 정일재(精一齋)라고 당호(堂號)를 지어주었고 당호현판(堂號懸板)은 동춘 송준길(同春 宋浚吉)이 친필로 현재 종가(宗家)에서 보존중이다.
 公은 재품(才品)이 초격(超格)하고 효우출천(孝友出天)하였으며 숭유(崇儒) 박학(博學)하여 향유(鄕儒)들과 사계서원(沙溪書院)을 창건 향사(創建 享祀)하였으며 가례규범(家禮規範)을 초(抄)하였으니 가례요결(家禮要訣)과 제의(祭儀)가 곧 그것이다.
 公의 配位 완산 이씨(完山 李氏)는 도사(都事) 사숙(士淑)의 따님으로 公과 합조(合兆)이고 아들 정우(廷羽)는 통덕랑(通德郞)으로 생부(生父)는 여해(如海)이다.
 公의 학행(學行)을 참작하여 통훈대부 상서원 부직장(通訓大夫 尙瑞院 副直長)에 제수(除授)하니 관직은 그뿐으로 오직 학문(學問)으로 일관(一貫)하였다.
 公은 학행(學行)으로 명망(名望)이 높았을 뿐만 아니라 효행(孝行) 또한 남달랐다. 公이 55세 때 모친상(母親喪)을 당하여 3년 시묘(侍墓) 살이를 한 후에도 일생을 육식(肉食)을 금하고 오직 소식(素食)으로 생을 마치니 후에 임금이 이 소식을 전해 듣고 정문(旌門)을 내렸다.
 
 위치:경기도 안성군 서운면 신흥리
 위치 : 경기도 안성군 서운면 동촌리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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