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행록(學行錄)
첨지공 한필적(僉知公 韓必迪)
公의 字는 적부(迪夫)요 호는 청절처사(淸節處士)이니 처사(處士) 효삼(孝參)의 막내아들이고 참판공(參判公) 천뢰(天賚)의 손자이다. 문정공(文靖公)의 六代孫으로 선조(宣祖) 32년(서기 1599) 12월 16일에 태어났는데 타고난 성품(性品)이 청고(淸高)하며 학식(學識)이 뛰어났다.
정묘호란(丁卯胡亂)을 만나 인조(仁祖)가 강도(江都 : 江華)로 피난(避難)갈 때 호위(護衛)하였다.
병자, 정축(丙子, 丁丑)년 이후로 벼슬을 버리고 충남 연기(忠南 燕岐)의 노팽정(老彭亭)에서 일생을 보내면서 자제들을 가르치고 후학들을 지도 하였다.
公은 일찍이 안씨가훈(安氏家訓) 여씨동몽훈(呂氏童蒙訓)과 같은 글을 지어 후손에게 남겼다. 公이 숙종(肅宗) 3년(서기 1667) 10월1 2일에 세상(世上)을 떠났다.
수암(遂菴) 권상하(權尙夏)가 시첩(詩帖)의 발문(跋文)을 지었고 증손(曾孫) 원진(元震)이 유사(遺事)을 엮었다.
公의 配位 강릉 최씨(江陵 崔氏)와 광주 김씨(光州 金氏)인데 공주 명탄면 부강(公州 鳴灘面 芙江) 남부용산(南芙蓉山) 先塋下에 公과 같이 신좌(辛坐)에 유택(幽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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