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행록(孝行錄)

 
생원공 한성좌(生員公 韓聖佐 : 仁祖 15年(1637) ∼ 顯宗 12年(1671) 22世)
 
 자는 여량(汝良), 청흥군(淸興君 : 壽遠)의 아들로 청녕군(淸寧君 : 德及)의 손자이며 증 정부인 함평 이씨(咸平 李氏)는 처사공(龍溪處士公 : 榮元)의 따님이다.
 공은 어려서부터 부모(父母)에 대한 효성(孝誠)과 형제간(兄弟間)의 우애(友愛)가 극진(極盡)하였다. 다섯째 아들로서 형들의 앞에서 재롱이나 부리는 위치에 있었음에도 형들을 섬기기를 아버지와 같이 존경(尊敬)하고 숭배(崇拜)하였다.
 어려서부터 놀기를 좋아하지 아니하고 항시 공부에 열중하였으며 그 총명함은 천동(天童)과 같았다. 따라서 아는 사람은 장차 큰 인물이 될 것이라고 칭찬하였다.
 현종 10년(1669) 사마시(司馬試)에 장원(壯元)으로 합격(合格)했으나 같은 해 12월 8일 부친상을 당하여 공부를 계속하지 못하고 여막(廬幕 : 상제가 무덤 옆에 오두막 집을 짓고 거처 하던 곳)살이를 하던중 이듬 해에 또 모친상을 당하여 계속 여막살이를 하였다. 부모(父母)를 잃고 매일 여막에서 통곡(痛哭)하는 애절(哀切)한 모습을 차마 눈으로 볼 수 없을 정도로서 주위 사람들은 공의 건강을 몹시 염려하였으나 결국은 이를 이기지 못하고 현종(1671) 집상중(執喪中) 에 요서(夭逝)하였다. 조정에서 이를 알고 가상(嘉賞)하여 사복시 정(司僕寺 正) 에 추증(追贈)하였다.
 배위 증 숙인 배천 조씨(淑人 白川 趙氏)는 군수 석록(郡守 錫錄)의 따님이다.
 슬하에 2남을 생하니 장남은 첨정공(僉正公 : 配休)이요 차자는 판관공(判官公 : 配愈)인데 처사공(處士公 : 聖弼)에게 계후 입양(系后 入養) 되었다.
 1991년 12대 종손 필규(弼奎)와 영규(英奎) 형제(兄弟)가 근구(謹具)하였다.
 
 位置 : 京畿道 華城郡 飛鳳面 三花里 63의6
 歲享日 : 陰 10月 11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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