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성부원군 한영정(西城府院君 韓永矴 : ?∼? 12世)
조선조 초기의 문신, 녹사공(錄事公 : 寧) 증 병조판서의 아들로 찬성사 서원군(西原君 方信)의 손자이며 어머니는 증 정부인 안동 권씨(安東 權氏)이니 영의정 문절공(文節公 : 仲和)의 따님이다.
공은 가문(家門)이 불의지변(不意之變 : 뜻밖의 변고)으로 참화(慘禍 : 참혹한 재앙과 화난)속에서 생장(生長)하였다. 그리고 이때는 이태조(李太祖 : 李成桂)가 고려를 타도(打倒)하고 조선(朝鮮)을 개국(開國)하던 혁명시기(革命時期)였다. 그후 조선조에 와서 벼슬길에 올라 여러 관직을 거쳐 순창군사(淳昌郡事)에 이르렀다. 이것이 바로 가운(家運)을 만회(挽回 : 바로 잡아 돌이킴)하는 계기(契機)가 된 것이다.
공의 생졸(生卒)과 관직년조(官職年條)는 전기(傳記)가 없어 알 수 없으나 장남인 양절공(襄節公 : 確)의 현달(顯達)에 따라 참판, 판서, 찬성, 영의정에까지 추증되고 서성부원군에 추봉된 사실만을 알 수 있다. 공의 묘소도 보첩(諸牒)에는 장단세곡(長湍細谷)으로 기재(記載)되어 왔으나 실호(失護)되어 고양시 내유동에 서원군(西原君 : 方信) 녹사공(錄事公 : 寧)과 함께 설단(設壇)하고 음 4월 13일 제사를 봉행하고 있다.
배위는 증 정경부인 의성 김씨(義城 金氏)이니 의성군 양소공(襄昭公 : 英烈)의 따님이다.
슬하에 3남 2녀를 생육(生育)하니 장남은 양절공(義節公 : 確)이고 차남은 참의공(叅議公 : 磌)이며 3남은 증 영의정 청성부원군 정랑공(正郞公 : 질)이다.
장녀는 명나라 성조(成祖)의 여비(麗妃)가 되어 중궁(中宮)의 내정(內政)을 전담(專擔)하였고 차녀는 세종 9년(1427)에 명나라 선종(宣宗)의 후궁(後宮)으로 궁중에 들어가 성종 14년(1483)에 별세하니 명나라 헌종(憲宗)은 몹시 슬퍼하고 탄식하며 사제(賜祭)와 시호(諡號) 를 공신(恭愼)이라 내렸다.
 
번호     이 름 조회
1 한방신 4613
2 한휴 3466
3 한계복 2988
4 한창 3748
5 한백륜 3946
6 한경석 3816
7 한후기 3476
8 한숙륜 3577
9 한녕 3642
10 한영정 4755
11 한확 3573
12 한치인 4067
13 한호문 2910
14 한인급 3561
15 한배하 4025
16 한사득 3839
17 한사직 3525
18 한광조 3117
19 한광회 3544
20 한광경 3706
123